•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사회

러시아와 미국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한국의 저출산

문통최고 51

1

1

IMG_8482.png

 

얼마 전에 러시아와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 준 일이 있었다. 30대 40대가 대부분인 이 사람들은 한국에 아주 높은 관심이 있어서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 중에서도 몇몇 인상에 남는 대화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가 저출산 문제가 자연스럽게 주제로 등장했다. 그 분들은 한국 출산율이 전 세계 최하위라고 들었다면서 왜 그러는지 궁금해 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설명을 했다. 부동산 문제도 있고 사교육 비용이 많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인데다 부모 형편도 좋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느냐는, 나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가 안 되는 눈빛이었다.

 

돈 없고 집 없으면 아이 못 갖는다고?

한국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것과 금전적인 문제를 왜 엮느냐는 것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의 핵심이다. 아이는 아이, 돈은 돈 아니냐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부동산 가격도, 교육비용도 한국보다 훨씬 높은 미국에서도 출산율이 그렇게 많이 낮지 않고 한국보다 훨씬 어려운 경제 수준인 러시아에서도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대화였다.

 

나도 한국 저출산 뉴스를 접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걸까? 얼핏 봤을 때 한국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 매우 적합하고 완벽에 가까운 환경을 갖춘 나라라고 이분들은 지적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도 깨끗하고 놀이터 시설이 많으며 백화점, 공항, 카페 등에도 아동 시설이 매우 잘 갖춰져 있으며 치안도 좋다. 어린이방이나 초중고 교육 시설이 풍부하며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들 같이 아이가 몇 킬로미터를 걸어서 강을 건너 어렵게 등하교 해야 하는 상황도 전혀 아니다. 미국도 러시아도 부러워할 수준이다. 여행객들이 볼 때는 아이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저출산 문제는 거의 전 세계가 부딪치는 문제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정부의 모든 정책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러시아는 국가의 강요와 함께 돈을 상상 이상으로 많이 쏟아부어서 급한 불을 끄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워낙 다양한 문화권에서 오는 이민자가 많아서 그나마 잘 버티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 정책이 아닌 사회적 분위기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아이 안 낳는 것이 코미디 조롱 대상이 되는 러시아

러시아에서 아이를 갖는 것은 옵션이 아닌 필수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젊은 사람이 20대 후반으로 넘어가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친척, 친구, 동료 등의 압박을 강하게 느낀다. 사회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결혼한 남녀는 아이를 최대한 빨리 가지려고 한다. 갓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때가 가장 힘들기 때문에 부모가 젊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가진 돈, 나라 정세, 부동산 문제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이를 가질 때 자기 집이 없으면 세를 내서 살면 되고 계약이 만료돼서 이사 가게 된다면 아이와 함께 이사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일자리를 잃게 되면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되고 그것마저도 안 되면 부모들이 도와 줄 거라고 생각한다. 왜 주거 문제와 수입 문제를 아이 양육과 연결을 짓는지 러시아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한다. 내가 돈 없으면 아이의 양육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질문에 “그럼 평생 돈을 많이 안 벌면 평생 아이를 안 가질 거냐”고 바로 되묻는다. 오히려 아이를 안 낳겠다는 사람에게 “그건 매우 부자연스러운 짓”이라고 비판을 하면서 왜 자기 부모를 무시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느냐고 따진다. 한국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 부모의 허락을 받는 효자들이지만 그렇게 존경하는 부모에게 손자를 안 드리는 것은 극히 이기적인 행동이며 역설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에는 늦게 임신하거나 아예 ‘child-free’ (평생 아이를 안 가지겠다는 의지)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예외 없이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된다. 방송에서도 부정적으로 보도되고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조롱의 대상이 되며 사석에서도 비난에 가까운 말을 견뎌야만 한다. 한국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세대를 앞선 고민들로 멍든 한국의 청춘들

미국인 친구들은 한국의 심한 경쟁 분위기와 한국만의 인생 매뉴얼을 언급하면서 비판한다. 청년들이 한참 즐겁게 놀아야 할 한국 10대는 이미 취직 생각으로 온통 부담을 안고 있고 20대 젊은이들은 결혼과 아이 양육 문제로 우울해지며 30대부터 벌써 노후를 고민하고 있다는 현상이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고민, 남들과 인생 속도를 맞춰야 하는 압박감, 때에 해당되지도 않는 걱정, 이 모든 틀이 사람을 비관적인 사고로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평가다.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은 나의 한 친구가 자기 미래 아들의 대학교 등록금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보면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난다 하더라도 수십 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당장 지금 고민하는 것은 좀 과한 반응이 아닐까 싶다. 미국인도 러시아인도 이해가 안 되는 사고방식이다.

 

사람들이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 분위기를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정부가 좋은 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부분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것 같다. 회사에서 여직원이 임신 때문에 불이익을 안 보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고 남녀 다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와 별도로 아이를 좋아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바로 그게 참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참고로 일리야씨는 한국에 귀화한 사람입니다. 한국의 청춘들이 세대를 앞선 고민들을 한다. 진짜 공감합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 진로 - 미래 - 노후에 대해 고민하니까요. 취업하고 나면 하는 고민이 바로 노후 대비인 사회니 원. 

 

어디선가 그런 글도 본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은 놀 때도 너무 치열하게 논다고. 취미는 취미일 뿐인데. 한국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수록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신고공유스크랩
1
1
새로운 시각의 분석이네요. 찾아서 읽어봐야지
24.05.02. 10:26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cmt alert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